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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동

자금동(自金洞)

자금동 지도

자금동은 자일동(自逸洞) 과 금오동(金梧洞) 의 2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는 행정동으로, 자금동이라는 이름은 자일·금오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북(北)으로는 포천시 소흘면(蔬屹面)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東)으로는 부용천(芙蓉川)이 서류(西流)하여 중랑천(中浪川)에 합류한다.

자일동 (樂陽洞)

자일동은 1914년 4월 1일 전국 행정구역 개편때 시북면(柴北面) 자일리(自逸里)·귀락리(歸樂里)·금곡리(金谷里)를 합쳐 시둔면(柴芚面) 자일리(自逸里)로 개칭하였다가 1964년 5월 8일『의정부의명칭과구역에관한조례』를 개정 공포(조례 제19호)하여 동년(同年) 6월 1일 동제(洞制)가 실시됨에 따라 자일동이 되었다. 자일동이라는 지명은 봉선사본말사약지(奉先寺本末寺略誌)에 의하면, 6백여년전 태고 보우(太古 普愚)스님이 이곳에 천보사(天寶寺)를 짓고 자적유일(自適遊逸)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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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일동 지명 유래 안내입니다.
귀락(歸樂) 귀락은 포천시 소흘면과 경계를 이루는 의정부시의 최북단(最北端) 마을로, 조선 영조(英祖) 중엽 박해문(朴海文)이라는 사람이 평안도 도사(平安道 都事)를 지내다 이 곳에 와서 마을을 개척하여 살면서 산수가 아름다운 이 곳에서의 삶을 늘 만족하게 생각했다. 하루는 그의 가노(家奴)들이 마을이름이 없어서 불편함을 털어놓고 이름을 지어 줄 것을 간청하자 "내가 이곳에 돌아와서(歸鄕) 여생을 즐겁게 지낸다(樂業)"라고 말하면서 마을이름을 귀락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또한 일설에는 이곳의 지형(地形)이 거북이가 떨어진 것과 같아서 귀락(龜落)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벼락바위 벼락바위는 민락동에서 축석으로 넘어가는 길가에 있던 바위로, 벼락을 맞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쇳골고개 쇳골고개는 쇳골(金谷)으로 넘어가는 고개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라리고개 서라리고개는 포천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조총으로 싸움을 하는 반면 의병들은 돌을 가지고 싸우므로 이길 수 없자 서럽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진등 진등은 귀락입구에서 벼락바위 아래까지 기다랗게 내려오는 등성이로 바닥이 찰진흙으로 이루어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진재등 진재등은 귀락에서 방아골로 넘어가는 진등의 중간에 있는 작은 고개를 말한다.
진너머 진너머는 귀락에서 방아골로 가는 길로 진재등너머를 말한다.
진들골 진들골은 진흙으로 이루어진 골짜기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인돌군 고인돌군은 진들골에 위치하며, 논 안에 고인돌이 있기도 하고, 논에서 개석을 들어다 겹겹이 쌓아 놓기도 하였다고 한다.
앞개울 앞개울은 앞고래와 진들골 사이에 흐르는 개울로 앞고래 앞으로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꽃봉 꽃봉은 귀락에서 광릉쪽으로 보이는 봉우리로 꽃같이 예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꽃봉을 넘어가면 무지랭이와 새능안이 된다.
앞고래 앞고래는 만여평 정도의 넓은 논으로 예전에 수백년 묵은 향나무가 있었다고 하여 향나무자리라고도 한다. 또한 이 곳에 기와배미논이 있는데, 기와배미는 어느 해에 너무 가물어서 논바닥이 기왓장 같이 금이 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잣나무고개 잣나무고개는 잣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찬우물골 찬우물골은 샛골고개의 응달 쪽에 있는 골짜기로 찬우물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앞의 고개를 찬우물고개라고 한다.
샛골고개 샛(사이)골고개는 무내미로 넘어가는 고개로 포천과 경계가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예전에 포천상인들이 이 길을 통해 장으로 갔다고 하여 옛고개라고도 불렀다 한다.
노구메골 노구메골은 샛골고개로 올라가다 왼쪽으로 있는 작은 골짜기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치성을 드리던 곳이던 노구메터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곳에 있는 소나무를 노구메소나무라고 한다.
거능골 거능골은 누원점이 사라지고, 5일장이 생기면서 포천의 상인들이 다니던 길이 있는 골짜기다.
범에골 범에골은 호랑이골이라고도 한다. 이 곳에 피가 묻어 있는 바위가 있는데 호랑이가 짐승을 잡아먹은 흔적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당골 불당골은 예전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이 곳에서 기왓장과 사기 등이 출토된다고 한다.
축석령(祝石嶺) 축석령은 천보산(天寶山) 기슭에 있는 고개로 포천군 소흘면(蔬屹面)과 경계를 이루며 의정부시 북쪽 관문이 된다. 일명 2백리고개라고도 하는데, 이 고개를 분수령으로 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포천천을 거쳐 한탄강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이르므로 철원과 서울까지의 거리가 2백리가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축석령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3백여년전 포천 어룡리에 오백주(吳伯周)라는 효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가 귀성도호사(龜城都護使)로 있을 때 고향에 계신 부친이 병환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벼슬을 버린채 고향에 돌아와 부친의 병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약도 차도가 없어 하늘을 탓하며 탄식만 하고 있는데 꿈에서 산신령이 크게 꾸짖으며 "네 아비의 병은 석밀(石蜜)을 먹으면 낫는데 게으름만 피우고 있느냐"하고 호령하자 그는 석밀을 구하기 위해 정과 망치를 들고 온 산을 헤매다가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내가 죽으면 부친을 누가 돌본단 말인가"하며 통곡하자 호랑이는 간데없고 바위만 남아 바위틈에서 석밀이 흘러 나왔다. 이에 부친의 병이 나으니 사람들이 오백주의 효성에 산신령이 가호를 베풀어 바위를 호랑이로 변신시켰다고 하여 그 바위를 범바위라고 불렸으며, 그 후 오백주가 매년 이 바위에 와서 고사를 지내고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다 하여 축석령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금곡리(金谷里) 금곡리는 광부촌(鑛夫村)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아미타불 모퉁이 나무아미타불모퉁이는 6.25 당시 축석전투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위해 세운 전승비 밑의 모퉁이로, 사람들이 이 곳에서 소를 팔고 오다 도둑에게 털리는 일이 많아서 안전을 기원하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자골 사자골은 나미아불타불모퉁이 밑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로, 이 곳을 넘으면 낙양도의 명마골이 나온다. 골짜기가 너무 으시시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목장골 목장골은 축석을 올라가다 왼쪽으로 있는 작은 골짜기로 예전에 이 곳에 목초지가 많아서 소와 말을 많이 길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성박골 성박골은 목장골 아래 골짜기로, 바위가 하나 있는데 안쇳골에서 바라보면 마치 성을 쌓은 것 같아 보이고 바깥쇳골에서 보면 족두리 같이 보인다고 하여 안쇳골에서는 성박골이라고 부르고 바깥쇳골에서는 족두리 바위 또는 성바위라고 부른다.
도둑골 도둑골은 성바위 아래 골짜기로, 민락동의 진도둑골·큰도장굴·작은도장굴 등과 같이 독립군이 숨어 있던 골짜기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작은자일(自逸) 작은자일은 본자일(本自逸)에서 축석으로 가는 길에 왼쪽으로 있는 작은마을을 말한다.
본자일(本自逸) 본자일은 1914년 4월 1일 전국행정구역 개편으로 자일리(自逸里)·귀락리(歸樂里)·금곡리(金谷里)를 병합하기전의 자일리를 말한다. 자일리라는 이름은 봉선사본말사약지(奉先寺本末寺略誌)에 의하면, 6백여년전 태고보우(太古普愚) 스님이 이 곳에 천보사(天寶寺)을 짓고 자적유일(自適遊逸)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막너머 막너머는 본자일에서 금곡으로 넘어가는 작은 산 등성이로, 넘기가 수월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탱이산 모탱이산은 의정부에서 본자일로 가는 산 모퉁이로, 이 앞의 개울을 모탱이개울이라고 한다.
쇳골 쇳골은 천보산입구의 마을로서 일명 금곡(金谷)이다. 예전에 이 곳에서 철을 캐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폐광된 광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곳 금곡이 안쇳골이고, 본자일은 바깥쇳골이라고 불렀다.
동산(東山)너머 동산너머는 안쇳골에서 바깥쇳골로 넘어가는 동산에 있는 작은 등성이로, 동쪽에 있는 산너머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석이고개 백석이고개는 축석에서 마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예전에는 많이 이용하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다.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다.
갓골 갓골은 백석이고개의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로, 이 곳에 호랑이 같이 생긴 호랑이 바위가 있다.
세자곡(世子谷) 세자곡은 성바위 왼쪽의 골짜기로 능안이라고 부른다. 세자의 묘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그 세자의 이름은 알 수 없고 묘도 남아 있지 않다.
능안고개 능안고개는 안쇳골에서 큰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세자곡에 세자무덤이 있었다고 해서 이 고개를 능안고개라고 불렀다.
뒷골 뒷골은 안쇳골 바로 뒤의 골짜기로 광산이 있었다고 하여 광산골이라고도 한다.
절골 절골은 천보사(天寶寺)라는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천보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전 태고(太古) 보우국사(普愚國師)가 창건한 절로 보우국사(1301∼1382)는 고려말의 명승인데 그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면 이 절의 초창연대는 1350년 이후로 보인다. 1944년 법우니(法雨尼)가 옛 사지(寺址)에 대웅전을 짓고 천보사라고 하였다.
쇳골고개 쇳골고개는 안쇳골고개에서 금오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해동창 해동창은 의정부에서 안쇳골로 들어오는 다리 위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로 해가 아침에 제일 먼저 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쇳골에서는 앞산이라고 한다.
방아골고래 방아골고래는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가는 길의 왼쪽에 있는 논으로 예전에 이 곳에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돌고개 돌고개는 일제시대에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가는 길을 신설하면서 생긴 고개로, 산을 돌아가는 고개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공사태밭 공사태밭은 금곡마을 앞에 있는 큰 밭으로, 이 곳에서 광부들이 공을 차고 놀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앞의 개울을 공사태개울이라고 한다.
작은자리골 작은자리골은 분두골 옆의 골짜기로 작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분두골(雰逗谷) 분두골은 독두소 위의 골짜기로 항상 안개가 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쉼재고개 쉼재고개는 분두골에서 궁말로 넘어가는 고개로 낙양동에서는 연무골고개라고 한다. 고개가 가팔라서 쉬어 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쑥고개 쑥고개는 자금동과 낙양동의 경계를 이루는 얕은 고개로, 낙양동에서는 색시골과 감자무골이라고 부른다.
금오동 (金梧洞)

금오동은 1914년 4월 1일 전국행정구역 개편때 시북면(柴北面) 금곡리(金谷里)·상서오리(上西梧里)·중서오리(中西梧里)·하서오리(下西梧里)를 합쳐서 시둔면(柴芚面) 금오리(金梧里)로 개칭하였다가 1964년 5월 8일 『의정부의명칭과구역에관한조례』를 개정 공포(조례 제19호)하여 동년(同年) 6월 1일 동제(洞制)가 실시됨에 따라 금오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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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동 지명 유래 안내입니다.
금오리(金梧里) 조선 선조(宣祖)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이 이 곳에 낙향하여 살았는데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번창하였다. 한편 포천에는 병조판서 서성(徐 )이라는 분이 살고 있었는데 서울을 왕래할 때 마다 이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늘 괴로움을 당했다고 한다. 한국국립지리원 지명조사록에 의하면 서서히 서쪽마을에 호랑이와 늑대같이 욕심많고 인정없는 사람들이 산다고 하여 서호랑리(西虎郞里)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후 변음되어 서오리(西梧里)가 되었고 다시 상서오리·중서오리·하서오리로 나뉘었다가 금오리로 합쳐졌다. 또한 이 곳을 부석동(浮石洞)이라고도 하였는데 현재 동사무소 앞 주논들에 있던 바위가 장마가 져도 잠기지 않고 물에 떠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상금오리(上金梧里) 상금오리는 성모병원 왼쪽에 있는 마을로 상서오리(上西梧里)를 말한다.
탑고개 탑고개는 탑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이 포천 현감으로 있을 때 포천에서 양주목으로 가는 길을 신설하면서 생긴 고개라고 한다. 일명 턱고개라고도 한다.
벼락바위 벼락바위는 탑고개에서 능선을 따라서 300m쯤 북쪽에 있는 바위로 벼락을 맞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묵골(沙墨谷) 사묵골은 탑고개와 세모꼴개울 사이에 있는 개울로, 계곡의 모래가 검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나무모퉁이 참나무모퉁이는 뒷동산 왼쪽 끝에 있는 모퉁이로 참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뒷동산은 마을 뒤에 있는 작은 동산으로 현재는 성모병원이 들어서 있다.
진천들(眞川) 진천들은 독두소 근방의 들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참내(眞川)가 흘러서 붙여진 이름이다.
빈골모퉁이 빈골모퉁이는 포천에서 금오리로 오는 돌고개 아래의 작은 모퉁이로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목골 오목골은 분두골 아래의 작은 골짜기로 오목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금오리(中金梧里) 중금오리는 상금오리와 하금오리의 중간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보산(天寶山) 천보산은 보우국사(普愚國師)가 초창(初創)한 천보사(天寶寺)라는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곳에는 조선 선조(宣祖)의 후궁인 정빈민씨를 비롯해서 제7자 인성군(仁城君), 손자 해원군(海原君), 증손 화릉군(花綾君), 화창군(花昌君), 화춘군(花春君) 그리고 인조의 동생인 능창군(綾昌君) 등의 왕손들의 묘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치마바위 치마바위는 천보산 밑에 있는 바위로 주름을 잡은 치마와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치마바위는 산곡동 거문돌의 치마바위 보다 훨씬 크다.
청룡굴(靑龍谷) 청룡굴은 치마바위 남쪽의 골짜기로 청룡이 승천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샘말 샘(사이)말은 중금오리와 상금오리 사이의 작은 마을로 사이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논들 주논들은 현재 구자금동사무소앞에 있는 들로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다. 이 곳에는 바위백이논, 구렁자리논, 가마우덩이 등이 있다. 위쪽으로는 일본 사람들이 새로 만들었다는 새둑논들이 있다.
독두소(獨逗沼) 터 독두소는 축석에서 내려오는 물과 부용천(芙蓉川)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져서 생겼던 큰 소(沼), 독포(獨浦) 또는 독개울이라고도 한다. 이 곳의 물은 거북나루까지 이어졌었다.
독두산(獨逗山) 독두산은 신곡2동의 민치골 북쪽에 있는 작은 산골짜기로 신곡동에서는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 없고, 자금동에서는 독두소 앞에 있다고 하여 독두산이라고 한다.
바위백이논 바위백이논은 주논들에 있는 논으로 큰 바위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마가 져도 그 바위만은 잠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금오리(下金梧里) 하금오리는 8.15해방 후까지도 집이 몇 채 되지 않았으나 현재는 상금오리·중금오리 보다 세대가 많다.
꽃동네 꽃동네는 본래 절동네라고 불렸는데, 초대 노인회장 이만구씨가 마을 노인들과 함께 길가에 꽃을 많이 심고 난 후 회의를 거쳐 마을 이름을 꽃동네라고 고쳤다고 한다.
경주당(敬主당) 터 정주당 터는 꽃동네 뒷산에 있으며 의순공주(義順公主)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터이다. 일명 정주당(定州堂)이라고도 한다. 의순공주는 금오동에서 이개윤(李漑胤)의 딸로 태어나 효종 1년(1650)에 청의 황자(皇子) 구왕(九王))으로부터 조선의 공주를 얻어 결혼하겠다는 요청이 있자 종실인 이개윤이 자신의 딸을 보낼 것을 자청하여 청으로 보내졌다. 이후 환국하여 불운한 말년을 보내다가 현종(顯宗) 3년(1662)에 죽으니 경주당을 짓고 넋을 달래는 제향을 울렸다고 한다. 지금도 주춧돌과 기왓장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이 곳에 있는 봉우리를 공주봉이라고 한다.
공주샘 공주샘은 경주당 아래에 있는 약수터로 명주실을 한 타래 넣어도 한 없이 들어갈 정도로 깊고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이 물을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는 절이 생기면서 물을 관리하고 있다.
노구메골 노구메골은 하금오리와 탑고개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노구메소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이 소나무에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안장바위 안장바위는 노구메골 능선에 있는데 말안장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에 앉으면 말을 타고 있는 것과 같고 앞뒤로 조금씩 흔들린다고 한다.
시북면사무소
(柴北面事務所)터
현재 금오초등학교 정문 오른쪽에 보면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느티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 자금동 226번지로 시둔면사무소가 있던 곳이다.
당안들 당안들은 바깥은 하금오리에 속하고, 안은 중금오리에 속한다. 매우 넓어서 논이 많으며, 경주당 터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된다.
무정골(無情谷) 무정골은 공주산 넘어 골짜기로 청나라에 끌려간 의순공주(義順公主)의 소식을 기다리기가 무정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호랑이굴 호랑이굴은 무정골 꼭대기에 있는 바위굴로 위아래로 두군데가 있는데 예전에 이 굴에 사는 호랑이가 마을사람들을 괴롭혀서 토벌한 결과 호랑이를 12마리나 잡았다고 한다.
거북말 거북말은 자금동파출소 뒤에 있는 마을로, 거북나루 앞에 있는 거북섬이 장마가 지면 능선만 남고 모두 잠겨 그 모양이 거북이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 곳에는 신곡동 사람들이 독두소에서 여기까지 줄을 메어 배로 건너 다니던 거북나루가 있다.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이 곳에서 물장수 하던 사람이 죽어 그 아들이 나누 위에서 울고 있자 한 중이 지나가다가 우는 연유를 듣고는 이 곳의 자리가 좋으니 그냥 묻어 드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 집안에 3대에 걸쳐 원님이 나왔다고 한다.
도라리들 도라리들은 예전에는 하천 바닥이었는데 물이 돌아 흘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후에 제방을 쌓으면서 논밭이 생겼고, 두물움논, 당할논, 돌알온 등의 논이 있었는데 현재는 자금주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족두리봉 족두리봉은 수락산의 상봉과 오리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족두리와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현동에서는 함지박 모양처럼 생겼다고 하여 함박바위라고 하며, 거문돌에서는 할미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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