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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동

의정부동(議政府洞)

의정부동 지도

의정부동은 원래는 둔야면(芚夜面) 의정부리와 파발막리(擺撥幕里)였으나 1914년 4월 1일 전국 행정구역 개편때 시둔면(柴芚面) 의정부리(議政府里)가 되었다. 1953년에는 의정부리를 동구(東區), 서구(西區), 남구(南區), 북구(北區)등 4개구로 나누었다가 1956년에 동구를 의정부1리, 서구를 의정부2리, 남구를 의정부3리, 북구를 의정부4리로 개칭하였다. 그후 1964년 5월 8일 「의정부시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를 개정 공포(조례 제19호)하여 동년(同年) 6월 1일 동제(洞制)가 실시됨에 따라 의정부 1·2·3동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의정부1동은 조선 선조(宣祖)때 교통·통신기관의 하나인 두험천참(逗驗川站)이라는 파발막이 있었던곳으로 옛날에는 파발막이라고 불리었던 곳이다.
제일시장을 비롯한 큰 시장이 산재해 있는 상업중심지역일 뿐만아니라 금융기관과 각급 단체가 자리잡고 있는 시의 중심부이다.

의정부2동은 군사시설이 주둔하고 있고 동(洞) 면적의 46%가 군사보호구역으로써 개발에 많은 제약을 받던 곳이었으나 신시가지개발과 수도권 전철의 개통으로 개발·발전중인 곳이다.

의정부3동은 동(東)으로는 40만 의정부시민의 젖줄인 중랑천(中浪川)이 남류(南流)하고 있으며, 서(西)로는 의정부2동, 남(南)으로는 호원동, 북(北)으로는 의정부1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의정부병무지청을 비롯하여 세무서, 우체국, 경기북부상공회의소 등의 공공기관이 들어서 있다.

모바일환경에서는 좌우로 이동하여 테이블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의정부동 지명 유래 안내입니다.
두험소(逗驗沼)터 두험소는 가능동의 곧은골개울(直洞川)에서 흘러오는 물로 형성되었던 큰 소(沼)로 현재 신곡교 (新谷橋) 상류일대에 있었으며, 의정부 기차역이 들어서면서 곧은골개울의 흐름을 현재의 신시가지 방향으로 바꾸어 없어졌다고 한다.
시둔면사무소
(柴芚面事務所)터
시둔면사무소 터는 구(舊) 시청 자리로 의정부1동 193번지이며, 현재 태영플라자 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경찰서터 경찰서 터는 의정부1동 194번지로, 6.25사변이후 의정부2동 420번지로 이전하였다.
동명사립학교
(東明私立學校)터
동명사립학교의 전신은 도평의원(道評議員) 이사항(李思恒)씨가 의정부3동 구 장터에 세운 대정의숙(大正義熟)으로, 최병호씨가 이를 인수하여 의정부1동 151번지 1,200여평 대지에 150여평의 건물로 동명사립학교를 설립하였다. 당시 교사는 박명근(朴命根)씨와 홍모씨 (이름은 미상)로 다른 공립학교와는 달리 한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학생은 오전반, 오후반, 야학반 등을 합쳐 250여명 정도였는데, 양주면이 읍이 된 다음해인 1943년부터 학생들이 양주국민학교로 편입되면서 폐교되었다. 최병호씨는 1944년에 양주농업학교(현재의 의정부공업고등학교, 의정부중학교, 의정부여자중 학교, 의정부여자고등학교의 전신) 개교 당시에도 강진구씨와 함께 대지의 일부를 희사하였다고 한다.
일본인학교 터 일본인학교는 일제시대 당시 경기도에서 제일 먼저 개설된 일본인들만이 다니던 학교였다. 현재 의정부1동 199번지인 그랜드호텔과 시민공원 자리에 있었다.
양주군청 터 양주군청 터는 현재 의정부1동 190번지인 의정부1동사무소 자리에 있었으며, 이 곳에서 도로 건너 편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양주지사가 있었다. 양주군청사는 6.25사변이후 의정부1동 220번지로 이전되었다.
여각(旅閣)터 여각 터는 의정부1동 155번지로 현재의 구터미널이 있는 부근에 있었으며, 상인들을 위한 숙소와 마구간, 외양간등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신사
(日本神社) 터
일본신사 터는 의정부1동 203번지로 지금의 중앙교회 자리다.
한내(恨川) 한내는 현재 시청 정문 북쪽에서 곧은골개울(直洞川)과 만나 곧게 흘러 두험소(逗驗沼)에 이르던 물의 흐름을 의정부 기차역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신시가지로 돌려 흐르게 하여 새로 생긴 개울이 다. 이에 농지가 하천으로 변한 땅주인들이 한내(恨川)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의 백석천(白石川) 을 말한다.
방죽계 방죽계는 의정부2동 411번지의 일대로, 이 곳에 있는 큰 저수지를 큰 방죽이라고 불렀고, 작은 저수지를 작은 방죽이라고 불렀다. 방죽은 방축(防築)이 변음된 것인데, 의정부 기차역이 들어서면서 곧은골개울을 현재의 신시가지 방향으로 돌려 흐르게 하여 방죽 주위의 논에 물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문태영(文泰榮)씨가 곧은골개울 상류 지점에 있는 보(洑)을 막아서 인공으로 수로 (水路)를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비행장과 주택이 들어서 있으며, 가능1동과 의정부2동이 일부로 나뉘어져 있다. 안골로 들어가는 입구 교각 위쪽에 그의 공적비가 서 있다.
신흥부락(新興部落) 신흥부락은 의정부2동 128번지 일대로, 6.25사변 이후 피난민들이 형성한 마을이다.
도살장 터 도살장 터는 지금의 전화국 부근으로 6.25사변 전까지 소를 도축하는 도살장이 있었으며, 도살장 에서 한내(恨川)로 물이 흐르는 곳에 장못(長淵)이라는 긴 연못이 있었다.
참나무계 참나무계는 사패산 약수터로 오르는 길에 큰 참나무가 서너 그루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당바위 무당바위는 참나무계 뒤 문예회관 위쪽에 있는 바위로, 무녀(巫女)들의 치성을 드리며 굿을 하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당바위 마당바위는 무당바위를 지나 작은 언덕을 넘으면 사패산을 오르는 능선에 있는 바위로 마당같이 넓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뒤에 움푹 파인 모양이 게와 같아서 게바위라고도 한다.
경성방직공장
(京城紡織工場)터
경성방직공장 터는 흥선로(興宣路)를 따라 곧은골 삼거리로 가는 길의 왼쪽으로 의정부2동 427번지에 있었으나 6.25사변때 없어졌다.
붕대공장 터 붕대공장 터는 경성방직공장 터 아래 의정부2동 423번지로, 일제시대에 군수품의 하나로 붕대를 만들던 곳이었다.
간장공장 터 간장공장 터는 경성방직공장과 붕대공장 사이인 의정부2동 428번지에 있었으며, 일제시대에 군수용으로 간장을 만들던 곳이었다.
고래뼈공장 터 고래뼈공장 터는 현재 석천빌딩이 있는 부근인 의정부2동 523번지로 군수용으로 고래뼈를 가공하던 곳이었다.
관솔공장 터 관솔공장 터는 의정부2동 436번지로, 관솔의 기름을 뽑아 일본군 비행기의 연료등 군수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새끼줄야적장 터 새끼줄야적장 터는 현재 의정부역 서부광장 사거리 근방인 의정부2동 494번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집하(集荷)한 새끼줄 수백만 묶음을 야적하였던 곳이었다. 이 새끼줄은 일본군이 난방연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구(舊) 장터 구장터는 현재 의정부3동사무소가 있는 부근인 의정부3동 134번지 일대에 있던 우시장과 5일장이 서던 장터로 장소가 협소하여 현재 양주군청이 있는 의정부동 220번지로 이전하게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의정부1동이 새로 생긴 장터는 새장터라고 하였다.
독짓네다리 독짓네다리는 현재의 백석천교(白石川橋)에서 50m 정도의 위쪽에 있었던 나무다리로, 근방에 독을 굽는 가마가 있어서 지게에 독을 지고 다리를 건너 다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샘들 터 샘들 터는 현재의 세무서가 있는 의정부3동 368번지 일대로, 샘물이 풍부하여 빨래터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연백촌(延白村) 연백촌은 의정부3동 163번지 일대로, 6·25사변 당시 황해도 연백의 피난민들이 마을을 형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남촌(越南村) 월남촌은 의정부3동 136번지와 137번지 일대로,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1970년대 말 이후부터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병막 터 병막 터는 의정부3동 129번지 일대로, 일제시대에 전염병 환자를 격리 수용하던 곳이었다. 이 곳에 있는 개울을 병막개울이라고 하였다.
백련이보(洑) 백련이보는 소랭이다리 아래 개울을 막아 논농사에 이용하던 보(洑)를 말한다.
파발막 또는
두험천참(逗驗川站)
파발막은 의정부1동 214번지 일대로, 조선시대의 서울에서 경원(京元) 아오지(阿吾地)까지 가는 첫 번째 파발막인 두험천참이 있었던 곳이다. 예전에는 의정부1동 일대를 파발막리라고 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전국 행정구역 개편때 시둔면(柴芚面) 의정부리(議政府里)로 병합되었다.
새장터 새장터는 의정부1동 220번지 일대로, 구장터는 우시장이 협소하여 이 곳으로 옮겨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곳에서는 6·25사변 전까지 우시장이 섰는데 장날이면 영·호남에서도 올라 올 정도로 꽤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가재울(佳佐洞) 가재울은 가능동에서 의정부1동으로 편입되었으며, 가재가 많이 살던 가재못이라는 연못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 표기로는 가좌동(佳佐洞)으로 정자나무들과 녹양동으로 이어지는 깐깐이들이 있다.
서낭당 터 서낭당 터는 의정부1동 234번지로 통일로를 닦으면서 이 곳에 있던 사낭당 참나무를 베어 버리면서 없어지게 되었다.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이 나무를 없애 버리려고 하자 가재울의 아낙네들이 참나무 주위를 돌면서 없애지 못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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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석
  • 문화예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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