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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계 박세당 고택 체험
서계 박세당 고택 체험
서계 박세당 고택 체험
- 위치 : 경기도 의정부시 동일로 128번지 36
- 홈페이지 : www.seogye.com
- 전화 : 031-836-8600
서계 박세당(1629~1703년)은, 조선 후기의 실학파들이 대개 그러했던 것처럼 완고한 시대 기류를 개혁하려다가 좌절한 지식인의 전형이다.
32세 때인 1660년에 문과에 장원한 후 부수찬, 예조참의, 승지를 거처 홍문관교리, 병조좌랑을 역임하는 등 영달의 삶을 살았지만
결국 학문적 신념 때문에 4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불우한 말년을 맞게 된다.
생애의 치적이라 할 수 있는 ‘사변록(思辨綠)’을 저술하였지만 당대의 통치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을 비판한 저서였기 때문에
결국 그는 ‘사문난적(斯文亂賊:못된 글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적)’으로 몰려 유배되는 처지가 된다.
70세에는 중추부 판사로서 ‘기로소(耆老所:벼슬한 70세 이상 원로 선비들의 모임장소)에 들어가는 영예도 얻었지만
1703년 백헌 이경석의 신도비명을 지은 일과 사변록 저술로 인한 필화에 걸려 유배형을 받게 된다.
그의 아들 박태보(朴泰輔)가 숙종 때 인현왕후의 폐출에 반대하다가 처형당했던 것이 감안되어 유배되지는 않았지만 그해 가을에 향년 75세로 사망했다.
박세당은 장암동의 은거지 사랑채에서 ‘색경(穡經)’을 집필했다. 뛰어난 농사관련 저술로 평가되는 책이다.
사랑채 앞마당에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방문객과 손님을 맞는데 안내판의 설명에 의하면 수령이 430년이다.
박세당이 사랑채에서 후학양성과 집필활동을 하는 동안 이 나무는 한창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도 선인의 위대한 자취는 남는 것임을이 은행나무가 증언하고 있는 듯하다.
박세당은 말년에 사문난적으로 몰려 서울로 압송되어 형벌을 기다리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생전에 손수지은 자신의 묘표에는 “어떤 시련에도 세상에 고개를 숙이거나 소침해 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선비로서의 기개가 배어 있는 그의 사랑채는 현재 12대손 박용우 씨가 관리하고 있고 그의 묘는 사랑채 바로 뒤 수락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유적과 선산과 종가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문화재 터는 전국에서 이곳뿐이라고 한다.
이처럼 서계 박세당 고택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장달이기, 화전놀이, 전통혼례, 다례체험, 전통예절체험, 종가음악회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전통고택의 독특하고 품격 있는 전통문화 체험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서계 박세당 고택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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