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동(金梧洞, 금오리)은 선조(宣祖)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이 이 곳에 낙향하여 살았는데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번창하였다. 한편 포천에는 병조판서 서성이라는 분이 살고 있었는데 서울을 왕래할 때 마다 이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늘 괴로움을 당했다고 한다. 한국국립지리원 지명조사록에 의하면 서성이 서쪽마을에 호랑이와 늑대같이 욕심많고 인정없는 사람들이 산다고 하여 서호랑리(西虎郞里)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후 변음되어 서오리(西梧里)가 되었고 다시 상서오리·중서오리·하서오리로 나뉘었다가 금오리로 합쳐졌다. 또한 이 곳을 부석동(浮石洞)이라고도 하였는데 현재 동주민센터 앞 주논들에 있던 바위가 장마가 져도 잠기지 않고 물에 떠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자일동(自逸洞)이라는 지명은 봉선사본말사약지(奉先寺本末寺略誌)에 의하면, 6백여년전 태고 보우(太古 普愚)스님이 이곳에 천보사(天寶寺)를 짓고 자적유일(自適遊逸)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관정자금동 (68.12.14)